Saving Private Park

2010년 12월 30일.

대사관 종무식을 하루 앞둔 목요일.오후 6시가 조금 넘어 다들 퇴근을 하려던 차에 아이티 단비부대에서 급한 전화가 왔다.

단비부대 사병 1명이 진지구축 작업 중 H-beam에 깔려서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는데, 골절 상태가 심각해서 아이티 UN병원에서 헬기를 통해 도미니카공화국 병원으로 이송되었다.  UN군 규정 때문에 보호장교 없이 사병 혼자 도미니카로 보내졌는데 연락이 두절되었으니 이 친구를 좀 찾아달라.. 는 내용이었다.

일국의 영사라곤 하지만, 참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.  대사님께서 KOICA 간호사 봉사단원과 함께 병원에 찾아가는게 좋겠다고 지침을 주셨고, 마침 연말이라 휴가차 수도 Santo Domingo로 내려온 Monte Cristi지역 이찬양 간호단원님과 연락이 닿았다.  이 단원님은 흔쾌히 ‘사고 사병 신병 확보’ 업무에 동참해주셨고, 대사관 이행석 팀장님과 함께 CEDIMAT이라는 병원으로 차를 몰아 갔다.

일단 병원에 가보니 다리가 부러진 사병은 바로 찾을 수 있었다.

박준영 일병.

아이티에 파견된 군인이면 왠지 늠름한 군바리 아저씨일 것 같은데, 완전 순진하게 생긴 소년이더라.  영어, 스페인어, 프랑스어 그 어떤 언어로도 말이 안통하는 상황에서 불안해하고 있었을 텐데, 왠 머리 큰 아저씨가 누나 둘과 함께 갑자기 찾아와서는 ‘도미니카에 온 걸 환영한다’고 하니 조금 안심이 되었을까.

환자 상태를 확인하고, 담당 의사 면담을 통해 의료진 견해, 수술 일정, 수술 내용, 재활 계획 등을 파악하는 것.

이 모든게 영사가 해야 할 일 같지만 사실 도미니카공화국 지역 곳곳에서 1년 이상 의료간호활동을 해온 이찬양 단원님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.  이 단원님은 이것뿐 아니라 수술이 바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주로 미뤄진 것을 이해할 수 없던 내게 한국에서 골절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는지 비교해서 잘 설명해 주셨고 박 일병에게는 입원해 있는 동안 골절 부위가 아프지 않도록 자세를 취하는 방법도 알려주었다.  함께 했던 이행석 팀장님도 간이 소변통을 비우고 부러진 다리에 베개 받침을 쌓아주는 등 마치 친누나 같으셨는데.. 정작 나는 대사관에서 싸온 귤, 그거 껍질까서 박 일병 입에 계속 넣어주는 것 외에는 별로 한 일이 없었다..

그렇게 2010년의 마지막이자 2011년의 첫 주말 몇 날 며칠동안 병원 문병을 간 기억이 난다.

생각해보면, 도미니카에서 근무하는 동안 내가 했던 모든 일이 다 그랬던 것 같다.  나는 별로 한게 없고, 주변에 돕는 이들이 하는 일들을 나는 옆에서 보기만 했던 것 같다.  내가 방해가 안되었으면 다행일까.  함께 했던 대사관 직원분들, KOTRA 직원분들, KOICA 관리요원님들, 봉사단원분들, NGO 관계자분들, 교회, 교민분들, 도미니카 counterpart들, Korea Fanclub 청소년들까지 그 분들의 helping hands들은 시간이 지나도 하나하나 생각이 나는데, 난 뭘 하고 지냈는지 모르겠다.  아, Pollos Victorina를 많이 먹었구나.

벌써 2013년이다.  산토도밍고를 떠나 서울에 돌아온지도 1년이 다 되간다.  도미니카에서 만나뵙고 함께 고생해줬던 모든 분들이 올 한해 더욱 행복하셨으면 좋겠다.

 
 

<박준영일병 구하기, 산토도밍고, 2010/11>